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특별한 지적에는 특별한 해명이 필요하다

페이스북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에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서 올리기까지 했는데 (게다가 트위터는 글 수정도 못해서 지저분하게 정정 트윗까지 올려야 했다) 그럴 거면 그냥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어서 올린다.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역차별을 없는 것처럼 넘어가거나, 혹은 역차별은 무시해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것이 거슬리게 여겨질 수도 있다.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떨 때에는 논리적 비약을 하거나 고통과 위험에 대해 초과 평가하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 보탤 수도 있다. 여론이 거세다면 반대의 편에서 한마디 보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과 위험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다만…하고 덧붙이며 어렵게 주장을 펴는 것의 어려움도 나는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지적이 논리 내적으로 아주 타당하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반발하는 이유는 그것의 논리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져서라기 보다는, 그러한 지적 한마디가 그 사람의 지난 발언 맥락 속에서 매우 선택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지적 한마디에 자꾸 이상한 의도를 읽게 되는데, 다만 그런 지적을 나쁜 의도로 읽게 되는 자신의 직관을 논리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딴소리를 하는 것 뿐이다. 한마디 보탤 능력이 있다면 왜 지금까지는 고통과 위험에 시달리는 약자를 위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는가. 어째서 약자들이 시달리는 강자들의 잘못된 논리에는 지금껏 대꾸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약자들이 고통에 겨워 소리지르는 와중에 삑싸리난 몇가지 논리만 날카롭게 비판하는가.

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발화자의 지난 발언의 맥락과 독립적으로 그러한 지적 자체도 우리는 소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논리적 보안을 견고히 하는 것은 도움이 되는 일이다. 세세한 논리적 세부 사항은 얼마든지 수정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약자의 편에서 큰 논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한 지적들에 대해 모든 것이 논리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식의 지고 들어가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작은 논리 한 둘이 잘못됐다고 해서 큰 수준의 담론이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logical fallacy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좋은 의도를 설명하는 데에도 큰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잘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도 꾸준히 약자의 편에 서서 발언해주는 것이다. 평소에 약자의 편에서 꾸준히 발언하던 사람은 가끔 반대편의 주장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지적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의도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