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오늘도 프로그래밍과 아무 관계 없는 얘기를 써본다.

Soylent로 점심을 때운지 두 달 남짓 됐다. Soylent는 이른바 식사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제품으로, 그런 종류의 제품 중에서 가장 먼저 널리 알려진 것이다. (앞서 Premist 님이 썼던 리뷰 Soylent 1주일 후기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쉽게 얘기해서 그것만 먹고 살아도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병이 나거나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식품을 목표로 한다고 보면 된다.

내가 먹어본 버전은 1.5와 2.0 두 개인데, 1.5는 Soylent 첫 버전부터 꾸준히 발전해온 분말 유형이고 봉투에 담겨서 온다. 2.0은 최근에 새로 나온 것인데 이미 음료 형태로 완성이 된 상태로 병에 담겨서 온다.

처음에는 2.0의 맛이 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선호했으나, 번갈아 먹다보니 몇일 지나지 않아 식사라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더 주는 1.5를 선호하게 됐다. 2.0에 비해 1.5는 호두 냄새 같은 게 더 나고, 살짝 건더기 느낌도 난다. 1.5는 먹는 느낌이 좀 나는데, 2.0는 마시는 느낌이다. 게다가 2.0은 정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 양이 내게는 좀 부족한 정도였다. 점심을 2.0으로 때우면 5시쯤에는 벌써 심하게 배가 고파진다. 1.5는 분말을 통에 담고 물을 직접 섞어서 먹어야 하므로, 양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정할 수 있다.

물론 빠르고 편하게 먹자는 이유로 Soylent를 먹는 것도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1.5는 2.0에 비해 손색이 있다. 은근히 통에 정량대로 가루를 담고 물 넣어서 흔드는 것도 일이다. 별 것 아닌 설거지도 귀찮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어, 특별히 규칙을 정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1.5과 2.0 중 어떤 것을 먹을지 정하는 기준 같은 게 생기긴 했다. 지각했을 때, 지금 당장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식사 못 했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입맛이 하나도 없는데 배가 비어 뭐라도 먹어야 할 때, 자정에 배가 고픈데 2시간 안에 잘 것 같을 때는 2.0을 마신다. 자정에 2.0을 뜯는 이유는 양이 적고 밤에 설거지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보통 1.5를 먹는다.

맛에 관해서는, 나는 어떤 음식이 맛있는 음식인지 잘 모르지만, 먹을만 했다. 앞서 얘기했듯 2.0이 더 깔끔해서 처음 먹을 때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1.5는 처음 먹으면 살짝 거부감이 드는데, 익숙해지면 오히려 거부감을 주었던 그 향이 더 식사 같은 느낌을 줘서 선호하게 되는 듯하다. 어쨌든 둘 다 똥맛은 아니다. 직장 동료는 1.5가 똥맛은 아니지만 흙맛이 난다는 얘기는 했던 것 같다.

다만 모든 식사를 Soylent로 때우기에는 나도 아직 미래인이 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처음 시도할 때는 연속으로 다섯 끼니 정도를 Soylent로 해결하기도 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짠맛과 MSG의 감칠맛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극적인 느낌이 그리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 집구석에 박혀서 식사는 대충 때우고 싶을 때, 점심은 Soylent로 때우고 저녁은 라면이나 스팸에 밥만 먹기도 한다.

이러한 식사 대체품으로는 Soylent 외의 여러 대안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도 벌서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회사에서 이러한 식사 대체품(회사 안에서는 미래 식량이라고 불리고 있고 Slack 채널이 따로 있다)에 대한 유행이 생겨서, 다들 이것 저것 서베이하고 도전해보았다. 나도 동료가 주문한 랩노쉬라는 국산 제품을 시도해 보았는데, 초콜렛 맛과 구운 오징어 냄새가 섞여있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서 한 통을 다 비우지 못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으로, 동료들 중에서는 오히려 Soylent보다 랩노쉬가 낫다면서 만족한 사람도 여럿 있다.

Soylent는 한국에서 가격적인 디메리트가 있다. 배송 대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도 적지 않고, 특히 2.0은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배송비가 많이 나간다. 이런 점 때문에 국산을 찾는 동료가 많았다. 나 같은 경우 2.0은 가격이 부담되기 때문에 더이상 주문하지 않고 1.5만 주문하려고 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장점도 하나 더 있었다. 내게만 해당될 듯하지만, 원체 소화 불량이 심해서 적어도 보름에 1번은 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Soylent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체하는 경우가 아직 없었다. 뭐, 이걸 먹어서 체한 게 사라진 건 아닐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