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텀블러 같은 나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트위터에서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던 걸 본 적이 있다. 한국은 텀블러 같은 나라라고. 나는 그 얘기가 무척 와닿고 정말 그렇다고 여겼다.

요즘 자주 돌아다니는 짤방 중에 경주와 교토를 비교한 짤방이 있다.1

Japan’s Nakasendo Walk

慶州市 — Gyeongju City, Korea

정확히는 경주 사진은 10년 전 모습이라고 하고, 일본 사진도 교토가 아닌 나라이라는 동네라고 한다. 한쪽은 10년 전 사진이고, 한쪽은 교토도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때문에 다들 퍼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실은 아니지만 저 대비 구도는 일정 부분 진실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거리가 아닌 일상의 휴대전화 사용을 떠올려 보자. 다음은 구글에서 스마트폰 알림으로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이다.

검색어: 스마트폰 알림

smartphone notifications screen으로도 검색해 보았다.

검색어: smartphone notifications screen

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양식 전반에 걸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 같은 게 있다고 여겨진다. 트위터에서는 누군가 그것을 텀블러 같다고 표현했는데, 텀블러에 로그인하면 나오는 대시보드 역시 포스트 사이의 연속성, 일관성이 매우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 포스트 하나하나는 매우 특색이 있고 강렬하다는 특징도 있다.

나는 그게 일종의 자기 완전성 같은 것이라고 느낀다. 무언가를 만듦에 있어, 결과물은 어떤 맥락에서도 뛰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맥락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가 어떤 자리에 놓일지보다, 결과 자체의 완전성이 더 중요해진다.

한국에서 자기 완전성은 예전부터 중요했고, 이는 사람에게도 적용되고, 사업에도 적용된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의 이런 경향이 필연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사에 자기 완전성과 개별의 뛰어남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거의 모든 결과에 대한 (실패했을 때의) 책임과 (성공했을 때의) 혜택이 개인에게 한정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같은 협력적 가치보다는 가장 돋보여야 한다 같은 경쟁적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책임/혜택을 개인에게 한정시키는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느낀다.

명예 문화(culture of honor)라는 용어가 있다. 오랜 기간 공공 치안이 떨어졌던 곳에서는 개인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이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 개인 스스로가 단호하게 보복하는 전통까지 생긴다. 이는 치안이 없는 사회에서 그러한 부당한 일이, 적어도 보복을 한 그 개인이나 집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공공 치안이 뛰어나다면 그런 야만적인 문화는 점차 억제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비슷하게 한국의 이러한 분위기도 일종의 자기 완전성 문화라고 불러보고 싶고, 협력/조화보다 경쟁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완화되면 그와 연관된 자기 완정성의 문화도 점차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원본 출처가 없이 돌아다니길래 출처를 열심히 찾았다. 사진에 걸린 링크를 누르면 사진을 처음 올린 곳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