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수상자 티머시 가워스(Timothy Gowers)는 그의 저서 아주 짧게 소개하는 수학(Mathematics: A Very Short Introduction)에서 왜 여성 수학자들이 그렇게 적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 가지 언급할 만한 점은 수학계에서 여성의 부족은 통계적으로도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매우 훌륭한 여성 수학자들이 존재하고 동료 남성 수학자와 마찬가지로 그들 중 몇몇은 천재이기도 하며 다양한 면에서 뛰어나다. 어떠한 종류든 여성의 수학적 성취에 상한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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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럴듯해 보이는 생각은 사회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수학적 능력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소녀는 여성스럽지 않다고 인식되는 일에 뛰어난 것에 불편해할 수 있다. 게다가 수학적 재능이 있는 소녀들은 역할 모델이 거의 없어서 상황이 악순환된다.
역할 모델(role model)이 거의 없다는 얘기를 보니 19세기 중후반의 러시아 여성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가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겪은 어려움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관심을 가졌으나, 당시 러시아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유학을 하려면 아버지나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소피야는 고생물학자 블라디미르 코발렙스키와 위장 결혼을 하였고, 블라디미르의
허락을 받아 186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유학하여 헤르만 폰 헬름홀츠와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아래서 2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였으나, 당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는 여성을 공식적으로 입학시키지 않았다. 그 뒤 베를린으로 이사하였는데, 당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는 아예 여성이 강의실에 있는 것조차도 금지하였다. 이 때문에 코발렙스카야는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로부터 개인 강습을 들어야만 했다.(…중략…)
박사 학위 취득 뒤 코발렙스카야는 빈곤을 피하기 위해 수학 강사가 되려 하였으나, 당시 유럽의 어느 대학교도 여성이 강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코발렙스카야는 심지어 무료로 강의하는 것을 제안하였으나 여전히 거절당했다. 빈곤에 시달리던 코발렙스카야는
남편블라디미르의 상점에서 조수로 일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