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Disclaimer: 나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좋겠다. 또, 나는 한국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한국에서는이라고 표현한 것이 실제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리 저리 직장을 옮겨 다녔지만 매번 개발자로 일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신입 개발자를 뽑을 때마다 마주했던 문제가 있다. 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 인턴, 대학교 졸업생 신입 개발자 상당수가 (공채를 통해 뽑았다면) 내가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수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신입한테 기대하는 수준은 이런 것이다. 주워들은 것은 많지만 실무 경험은 없어서, 코딩을 하고 나면 꼭 사고를 친다. 실제 수준은 이렇다. 코딩을 못하므로 사고를 칠 일도 없다.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교 관련 학과 졸업생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랑, 내가 다니던 실업계 고등학교의 관련 학과 졸업생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대학생이 학교에서 분명히 기본적인 알고리즘과 자료구조, 코딩을 가르치는 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약간이라도 유용한 프로그램을 단 한 줄도 작성하지 못하는 상태로 졸업하는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할 것이다. 가령, 전공의 지식보다는 영어나 자기소개서 준비와 같은 학과에 크게 관련이 없는, 일반적인 취업 스펙을 쌓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첫 전공 수업에서 다루는 지식의 너무나 이질적이고 거북한 느낌에 받을 수밖에 없는 충격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내가 줄곧 대학생이었던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인턴으로 들어온 대학생들, 막 졸업한 신입 개발자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스스로 그 분야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재능이 없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흥미가 없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생의 상당 비율이 그러한 느낌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 각각의 전공 선택이 실수인 것이 아니라,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 내지는 합의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대학을 갔다면 나는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려고 했을 것이다. 혹은, 컴퓨터는 취미로 공부하기로 정하고, 다른 자연 과학 내지는 공학 분야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능에서 요령으로, 혹은 컨닝을 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서, 운 좋게 의대나 법대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의대/법대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 좋게 의대/법대를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막상 들어간다고 해도 잘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언제나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점수 맞춰서 대학 가기라는 전략이 주로 널리 쓰인다.

여러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사회적인 문제로 돌려야 하겠으나, 그게 하루 아침에 고쳐질 리가 없고, 이 글에서는 개개인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사람의 재능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법하다. 하나는 어떤 특수한 분야에만 유용하고, 다른 분야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은 특수한 재능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분야를 하건 대체로 다 도움이 될만한 일반적인 재능이다. 가령 끈기나, 체력, 이해력 등은 일반적인 재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특수한 재능은 어느 정도 지니고 태어나지만, 일반 재능은 좀더 귀한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걸 풀어서 얘기하면, 어떤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어떻게든 잘 해낼 수 있는 재능은 흔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내게 그러한 일반 재능이 풍부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리스크가 매우 높은 베팅이다.

점수에 맞춰서 학교와 전공을 고른다는 전략은 결국은 그러한 일반 재능, 너무나 희귀한 그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만 좋은 전략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전략은 무리수에 가깝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대체로 반대의 의견을 지닌다. 그래도 공부가 제일 쉬워는 오래된 격언이다. 나는 그 격언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데에 베팅했다.

물론 학생 개개인에게 어떠한 특수한 재능이 있는지 측정하는 것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반면에 일반 재능은 그것을 잘 측정하는 방법만 개발되면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가령 수능은 이름 그대로 일반적인 수학 능력에 대해서 측정한다. 하지만 전국의 학생들 중에서 만에 하나 있을 뛰어난 바둑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프로 기사 시험을 수능과 함께 보게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각자의 특수한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 된다. 수능은 내가 치지 않겠다고 해도 선생님과 부모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해주지만, 프로 바둑 기사 시험을 치르는 것은 나의 선택이 된다.

그럼 뭘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가정 교육 수준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즐거움이란 특수한 즐거움을 말한다. 위의 특수 재능과 일반 재능을 나눈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움도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을 법하다. 가령 친구들과 어쩌다 바둑을 하면서 다들 지루해 하는데 나만 즐거워 한다면, 그것은 특수한 즐거움이다. 반면 다같이 비디오 게임을 했는데 모두들 즐거워 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즐거움이다. 요는 다른 사람은 별로라고 하는데도 나한테는 즐거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컴퓨터실에서 친구들과 다같이 게임도 했지만 HTML로 홈페이지 만드는 수업도 했다. 게임은 나도 즐겁고 친구들도 즐거웠지만, 홈페이지 만드는 것은 나만 즐거워 했다. 나는 어릴 때 그러한 차이에 주목했기 때문에 컴퓨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즐거움은,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 재능의 신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