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표준어는 그들이 원해서 선택한 언어가 아니다

맞춤법을 안 지키면 교양이 없어 보인다. 가능하면 표준 한국어를 쓰는 것이 좋다. 다, 좋은 얘기다. 나는 저러한 지침을 견고함의 원칙(robustness principle)으로 해석한다. 사람마다 해석 가능한 한국어의 스펙트럼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표준어에 부산 방언까지 이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표준어에 인터넷 은어, 또 어떤 사람은 표준어에 제주도 방언밖에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가장 대표적인(canonical) 한국어인 표준어를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견고함의 원칙 반대편을 생각해보면 이런 뜻도 된다: 남이 표준어가 아닌 한국어를 쓰더라도 최대한 알아 들어주는 것이 좋다.

영어 스펠링 및 구두법을 틀리는 사람보다 한국어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을 훨씬 보기 쉬운데, 심지어 전자의 샘플을 영어를 외국어로만 배운 한국인으로 한정해도 그렇다. 다른 언어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어도 맞춤법 틀리는 사람이 한국어보다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한국어 맞춤법이 어렵다는 짐작도 할 수 있다. 즉, 한국어 맞춤법의 어려움은 보편적인 것이지 온전히 개인의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춤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거나, 맞춤법을 틀렸다고 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맞춤법을 지키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맞춤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맞춤법을 틀리는 것을 놀리거나 너무 탓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들고자 한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지만 종종 써야하는 외국어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영어일지도 모르고, 일본어일지도 모르고, 중국어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 언어로 말을 하고 작문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문법과 맞춤법을 자주 틀린다고 하자. 결정적으로, 당신은 그 언어를 사실 좋아서 쓰는 것도 아니다!1 나는 얼른 (그 언어를 써야 마칠 수 있는) 일을 끝내고 싶은데 상대방이 자꾸 나의 (쓰고 싶지도 않은) 언어 사용에 대해 딴지를 건다. 여기 틀렸어요. 여기는 문법이 말이 안돼요. 어떤 마음이 들까?

나는 언어에 대해서는 규범주의(prescriptivism)보다 설명주의(descriptivism)를 좀더 지지하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어와 표준 한국어는 다른 언어다. 한국어는 통상 한국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합집합이고, 표준 한국어는 그보다 훨씬 협소한 부분집합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들이 원해서 선택한 언어는 표준 한국어가 아닌 부모님과 형제, 주변 친구들에게 영향받아 배운 그냥 한국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표준 한국어를 사회로부터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할 때만 (어색하게) 쓸 뿐이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언어(가령, 영국 영어, 혹은 북경어—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일부는 아예 한마디 중국어도 모를 것이다)의 규칙을 요구받는 기분을 상상해본다면, 맞춤법 틀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더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춤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분은 앞으로도 맞춤법을 잘 지켜주길 바란다. 그것은 여전히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1. 혹시나 기꺼이 배우려고 하는 언어를 상상하고 있었다면 별로 배우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다른 언어를 떠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