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우선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진화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 관한 어떠한 전문적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이 어떠해야 한다에 가까운 얘기라서 한번쯤 말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1. 이덕하: Bayesian 님, 지식과 용기가 있다면 제 글의 내용을 비판하십시오
  2. Bayesian: 이덕하씨에 대한 응답
  3. 강규영: 학(學)과 학위, 전문성과 자격증

이 글은 주로 맨 마지막 강규영 님의 글에 대한 감상이다.

첫째로 나는 Bayesian 님이 과학적 연구가 어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Bayesian 님이 모든 전문적 연구가 어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Bayesian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연구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에 포함되지 않는 전문적 연구에 대해서는 Bayesian 님이 주장하는 절차를 따를 이유가 없다.

Bayesian 님이 제시하는 과학적 연구의 요건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과학적 주장은 증거가 동반되어야 하며,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확정적인 태도로 주장되어서는 곤란하다. 과학적 주장은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검토받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주장들이 과도하게 섞인 진화심리학 교과서가 생긴다면 매우 끔찍하긴 할 것이다.

두번째 감상은 이렇다. 강규영 님의 글은 요약하자면 학위만이 전문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며, 논문과 저널이 아닌 형태(가령 블로그)로도 전문적인 연구가 가능하고, 오히려 이런 대안적 미디엄을 통한 연구에 대해 기존 연구자들이 검토해주면 좋을 것 같다인 듯하다.

문제는 Bayesian 님이 원 글에서 모든 전문적 연구가 어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없으며,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그 방식이 기존 학계의 관행에 따라야 한다는 등의 주장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강규영 씨의 글은 전문 연구에 대한 대안적 성찰로는 참신하고 좋은 내용을 가진 듯하지만, 원 글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주장하지 않은 바를 반박하고 있으므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번째로, 강규영 씨가 글에서 제시한 대안적 연구 방법은 ‘과학적 연구’로 한정시켜서 생각한다면 다소 부적절해지는 면이 있다. 가령 동료 과학자의 검토를 받으려면 결국 저널과 같은 채널이 필요한데 블로그는 과학적 주제들을 위한 특수한 채널이 (내가 알기로는) 딱히 없다. 그리고 현재 많은 과학 블로그들이 주석과 참조를 열심히 달긴 해도 자기 자신의 주장을 묘하게 섞어놓는 경우도 많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도 비판의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그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주장을 받쳐줄만한 증거를 제시하는 곳도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블로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 과학적 주장에는 증거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전문적 주제가 과학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령 내가 프로그래밍 언어의 미래는 타입 이론이 아니라 사용성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니까, 즉 과학적 주장은 아니므로 증거가 동반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물은 내 기분을 알고 있고 그에 따라 반응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므로, 즉 과학적 주장이므로 증거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설명은 결코 완전한 진리로 남아있을 수 없으므로 언제까지나 유보적인 태도로 주장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어떠해야 하고, 과학적 연구는 어때야 하는가는 과학 철학의 문제이다. 하지만 과학에 능통하다고 해서 과학 철학에도 능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 연구가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합의된 과학적 연구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서 좋은 연구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학적 연구가 어떻게 되어야 할지를 따져 묻는다면 얼마간 과학 철학이 필요해진다.

내가 가진 과학 연구에 대한 입장은 전문 과학자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입장이므로 내가 완전히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 철학에 관한 내 최근의 생각들은 주로 Massimo Pigliucci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임을 일러둔다.


업데이트: 이후 다른 분들의 후속 발언들.

@hongminhee @bayescog 과학적 주장엔 경험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akngs.tumblr.com/post/471697522…

April 5, 2013

@hongminhee 전부 아주 꼼꼼하게 읽진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민희님 말씀에 젤 공감하는 편입니다. 강규영님의 말씀은 뭔가 괜히 비전공 전문자를 옹호하기 위한 반박? 같은 느낌이 들구요. 원래 주제와 빗나간듯한...

April 5, 2013

과학적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한가?라고 믈으면 좋은 답변이 나오기 어렵다. 어떤 과학적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떤 근거가 얼마만큼 필요한가?라고 물어야함.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글이 nullmodel.egloos.com/m/2082479 읽어볼만하다.

April 5, 2013

업데이트: 이후 내 생각은 달라졌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연속된 두 포스팅을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