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왜 어떤 것은 도둑질이 되고 어떤 것은 괜찮다고 여겨질까

윽. 약간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 같아서 추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왜 무엇은 사고 싶고 무엇은 사고싶지 않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왜 어떤 것은 도둑질이 되고 어떤 것은 괜찮다고 여겨질까의 문제임. 그래서 아예 글 제목을 그렇게 고쳤음.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음악(음원)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들의 의식없음에 불평한다. 나도 대체로 그런 생각을 해왔고, 지금은 좀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그러한 불평에 동감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소프트웨어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다음은 Twitter에서 떠돌던 재밌는 일화이다.

A: 컴퓨터 작업을 하려면 워드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비싸니까 어둠의 경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요.B: 네.. 저도 컴퓨터 작업을 하려면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비싸니까 하나 훔쳐오려구요.A: 그건 도둑질이잖아요!

— 황금가지 (@goldnerbaum) 2013년 1월 6일

사람들의 의식없음을 개탄하고 불평하는 것도 약간은 마음의 위로가 될지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런 불평, 혹은 그것을 희화하는 것으로 승화시킨 sarcasm을 블로그에 쓰거나 Twitter에 올려서 무한한 리트윗을 받더라도 당신이 만든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율이 딱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켠에서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런 말들에 동조해주고 리트윗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설득시킬 대상은 처음부터 아니다. 설득시킬 대상은 그런 트윗에 노출되더라도 리트윗까지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누군가를 깔보는 태도로 쓴 글은 설득력을 오히려 반감시킨다.

이제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의 달라진 관점에 대한 것이다. 내가 새롭게 갖게 된 관점은 이렇다.

나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의식없는 것처럼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얼마간 동감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간이 여유롭다면 아래 링크된 두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위 글을 쓴 사람들이 남들보다 의식이 없어서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사실, 저 글은 음악(음원)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선동하는 글이 아니다. 저 두 글의 태도는 ‘근데 생각해보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꼭 틀린 건 아닐 수도 있어…’라고 조심스럽게 다른 관점을 시도하는 태도에 가깝다. 나는 그리고 그런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에서뿐만 아니라 매사에 본받으려 하고 있다(내가 이런 태도를 의식적으로 갖으려 노력하게 된건 불과 2년이 되지 않는 일인 듯하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한편, 내용에 있어서는 동등한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와 규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음악 CD와 MP3 음원은 (CD에는 물론 두꺼운 부클릿이나 DVD, 아이돌의 음원인 경우 화보집 같은 것들이 더 들어있긴 해도) 동등한 내용을 담는 다른 미디엄인 것은 자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음악 CD에 돈을 지불하는 것보다 MP3에 돈을 지불하는 것을 좀더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이 사례만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가설은 사람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면 지불 의사에 상당한 태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지불에 대한 태도를 다른 모드로 스위치하는 조건은 구매 대상의 tangibility이다.

하지만 앞서 링크한 Defining Property의 처음 사례를 떠올려보자. 아무도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의 맛있는 냄새에 돈을 지불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 냄새는 포만감을 주기보다 없던 식욕을 오히려 만드므로 당연히 돈을 지불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향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향수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기를 맡는만큼 돈을 지불하라고 하면 대개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이 논의를 너무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향기 역시 음악처럼 어떤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사례를 떠올려보면 tangibility는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척도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가설이 사람들을 아주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신 새로운 가설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새로운 가설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기각한 기존 가설을 반박하는 사례가 무엇이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만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지불하는게 말이 안되는 사례는 멀리 찾을 것 없이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떠올리면 된다. 대동강 물을 돈주고 판다는 발상이 사람들에게 기막힘을 주거나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동강 물이 에비앙만큼이나 잘 만져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만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것들도 있다. 가령, 사람들은 MP3는 그냥 받지만 웹하드 용량에는 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사례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을 좀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새로운 가설은, 사람들이 지불을 당연하게 여기게 하는 기준은 구매 대상의 소모성에 있다는 관점이다.

이 가설은 사람들이 음악 CD는 돈 안주고 가져가면 도둑질이 되지만 MP3는 토런트로 받아도 문제없다고 여기는 이유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해준다. 음악 CD는 레코드점에서 돈을 주고 사면, 레코드점에 있던 음악 CD가 사라진다. 반면 MP3 파일은 내가 돈을 주고 사더라도 그것은 사본일 뿐, 음원 판매 사이트의 MP3 파일 갯수가 주는 것은 아니다.

이 가설은 향수와 향기의 차이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가게에 향수의 재고가 5개 남아있었는데 내가 돈을 주고 샀더니 4개가 되었다. 하지만 향기는 좀 맡는다고 닳지 않는다. 음식은 먹으면 내 뱃속으로 사라지지만 음식 냄새는 맡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앞선 두 예제는 모두 tangible하면서 소모적인 것과 intangible하면서 복제되는/소모되지 않는 것의 비교이기 때문에 기각한 가설과 새로운 가설 모두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지만, 봉이 김선달의 예는 기각한 가설은 설명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설이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례이다. 대동강 물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무한에 가깝기 때문에 내가 좀 마신다고 해서 닳지 않는다. 즉, 판매자의 재화를 딱히 소모시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웹하드 역시 비슷하게 설명이 된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하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여기는 것들을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포장할 방법에 대해서도 힌트를 준다. 가령, 앞서 예로 든 웹하드를 떠올려보자. 웹하드 운영사는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예금의 총합보다 적게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웹하드 용량의 예비율을 실제 고객이 구입한 용량보다 적게 유지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는 편이다. 이는 명백히 웹하드 용량이 사용된 만큼 소모된 것이 아니지만, 고객은 웹하드 용량이 마치 부동산처럼 다른 고객이 구입한 공간과 물리적으로 배타적이여서 전체 웹하드 용량이 소모된다고 보기 때문에 지불할만 하다고 여긴다. 디지털 음원사들은 대체로 음원 자체에 가격을 매기는 대신 음원을 살 수 있는 일종의 슬롯에 가격을 책정하고, 실제로도 음반 자체를 파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널리 퍼진 수익 모델이다. 패키지 게임은 잘 안 팔린지 오래되었지만 유료 아이템 모델은 여전히 잘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팔려는 재화가 실제로 소모적인지가 아니라, 소모적인 것처럼 보이느냐인 듯하다.

그렇다고 항상 소모적인 관점을 제시해야만 사람들이 지불을 기꺼워하고 복제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무조건 지불을 하지 않으려한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복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지불 유도가 힘든 경우에는 대체로 소모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게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데 좀더 수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이 가설이 맞다면 웹툰 유료화는 돈을 주고 감상하는 단순한 방식보다는… 아 내가 이걸로 사업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