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삼성전자의 경우, 최도석이 오랫동안 관리담당을 맡았다.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의 관리담당이었던 까닭에 그는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그에 대해서는 잊기 힘든 기억이 많다. 그 중 하나가 ERP(전사적 지원관리) 소프트웨어인 SAP-R3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다. 독일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이 개발한 SAP-R3 프로그램의 권위는 대단하다. 이 프로그램의 사용 여부가 회계 투명성에 대한 보증으로 여겨질 정도다.

삼성전자에서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관리담당인 최도석이 강력히 반대했다. 이 프로그램은 물류와 회계가 전부 연결돼 있어서 회사 내부 사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면, 계열사 경영 실태를 감시해야 하는 관리담당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최도석은 왜 반대했을까.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삼성전자는 SAP-R3를 도입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구조본 재무팀에 있는 최광해가 주도해서 SAP-R3를 뜯어고친 뒤에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최광해가 SAP-R3를 고치기 위한 TF팀을 꾸렸다. 4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팀인데, 구성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대단한 실력자들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최광해가 TF팀장에게 자주 밥을 사며 격려했고, 결국 이 팀은 SAP-R3를 뜯어고치는 데 성공했다. 2년에 걸친 수정 작업을 끝내고나서, 최광해는 프로그램의 엔진까지 손대야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정된 SAP-R3는 다른 계열사에서도 전파됐다. 한때 최광해는 구조본 재무팀에서 삼성 전 계열사 운영담당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으나, 김인주의 견제로 역할이 축소됐다.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서울: 사회평론,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