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이하의 글은 2011년에 쓴 것입니다. 오래된 글인 만큼, 현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잘못 알려졌던 정보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제 오래된 글이 회자되는 것을 저어합니다. 읽기에 앞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Startup Nihilism

최근 개인적인 사건 몇가지를 겪으면서 나는 스타트업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다. 스타트업 그딴건 부질 없고 도박 같은 투기 행위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도박과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역시 희망에 중독되어 포기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혐오했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언제까지나 이 허무주의에 빠져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 정도가 다행이랄까.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스타트업 현장에서 한발짝 물러나 스타트업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즘에 느끼는 바가 있었는데…

과연 스타트업 파운더는 좋은 리더여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별 고민 없이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달라졌다. 파운더의 임무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팀을 지휘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임무가 있을까?

글쎄, 나도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한 가지가 생겼다. 바로 좋은 인재들을 모으는 것이다. 좋은 인재들을 불러 모아 팀을 조직하는 것이야 말로 스타트업을 설립(found)하는 것이고, 그 팀을 지휘하는 것은 설립 이후의 일로 볼 수 있다. 마땅한 리더가 없다면 파운더가 보통 리더를 하지만, 파운더가 자신보다도 뛰어난 리더를 데려왔다면 그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리더를 포함한 초기 팀 구성원을 잘 모으고, 그들에게 떡밥(motivation)을 살포시 건내주는 것이야 말로 파운더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다소 부차적인 일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파운더가 정한 목표는 리더가 더 좋은 목표를 제시했을 때 대체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LangDev IRC 채널에서 했더니 이런 반응이 오갔다:

<_khris_> 네 전대물에서 레드가 리더를 하지만 레드가 사람을 모으진 않죠
<sanxiyn> 앗 전대물에서 사람을 모으는 건 누구죠
<홍민희> 박사죠 보통
<_khris_> 보통… ㅇㅇ 네
<_khris_> 박사 아니면 공주 이딴 존재들

그렇다, 리더는 레드지만 파운더는 박사나 공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