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이하의 글은 2010년에 쓴 것입니다. 오래된 글인 만큼, 현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잘못 알려졌던 정보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제 오래된 글이 회자되는 것을 저어합니다. 읽기에 앞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Last.fm과 나의 음악 감상

Last.fm을 거의 4년째 쓰고 있다. 서비스 하나를 4년 이상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쓰는 서비스 중에서 4년 넘어가는 게 뭐가 있을까? Google과 Google Reader, Gmail 말고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Last.fm은 내가 4년을 쓰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쓴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만큼 내 생활에 녹아들었다는 소리가 아니다1.

우선 내가 Last.fm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Last.fm 서비스가 제공하는 기능은 많지만 표면적으로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당신이 좋아할만한 (그러나 아직 당신이 접하지 못했을) 음악을 추천해준다라고 생각한다. (정작 유료화된 부분은 상관 없는 쪽이지만.) 하지만 내가 Last.fm을 쓰는 이유는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들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정작 4년을 썼으면서 Last.fm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들은 경우가 손에 꼽힐 정도다.

내가 Last.fm을 사용하는 이유는 내가 진짜 어떤 음악을 듣는지 보고 싶어서이다. 잠깐,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음악을 딴 사람이 틀어주는 것도 아니고, 보통은 자신이 선곡을 해서 듣는데 무얼 듣는지 모른다는 얘기인가? 물론 모두들 자신이 어떤 음악을 많이 듣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둘을 떠올려보자.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에 비해 몇 배 정도 많이 재생할까? 전혀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취향도 변하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록 음악을 좋아하여 Led Zeppelin을 많이 들었는데 나이를 먹어서는 재즈가 좋아져서 Miles Davis를 많이 듣게 되었다면, 비교적 최근에 들은 Miles Davis는 횟수는 몰라도 대략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는 감이 잡히는데 어렸을 때 들었던 Led Zeppelin은 막연히 많이 들었다는 생각만 들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음악을 들을 수 없었으나, 직장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재생 횟수에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의 큰 격차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2

Last.fm을 쓰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음악을 듣는 습관을 변화시키지도 않고 그런 것을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인 것 같다. Last.fm에 가입하고 나서 Last.fm Scrobbler만 설치하면 그 뒤로 무언가 해야하는 일은 없다. 집에서 듣는 음악은 모두 iTunes로 재생하며, 외출해서는 iPhone이나 iPod으로 음악을 듣는데, 이 모든 재생 기록(언제 무엇을 들었는지)은 Scrobbler가 알아서 수집한다. 자동으로 되기 때문에 내가 서비스에 대해서 해야할 행동이 없다. 즉, 관리 비용이 없다.

수집된 내 재생 기록은 로 데이터(raw data) 그대로 조회할 수 있으며, 내가 이번주에 어떤 아티스트를 제일 많이 들었고 그 회수는 얼마나 되는지, 가장 많이 들은 트랙이 무엇인지 등을 간단하게 그래프로 보여준다. Last.fm이 음악 추천을 괜찮게 해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이러한 로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수집된 ‘자신의 음악 감상 실태’를 보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왜 재미있냐고? 사실 난 Last.fm 쓰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오덕 노래를 많이 듣는지 몰랐다. Last.fm에 나온 내 음악 감상 통계를 보고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작 손이 가는 트랙과 앨범 사이에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렇게 통계를 내서 결과를 보면 자신의 예상과는 영 딴판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Led Zeppelin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쪽은 LINKIN PARK나 LUNA SEA3일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4

참고로 이 scrobbling은 최소한 트랙의 반 이상을 들어야 한 번의 재생으로 수집되기 때문에, 평소에 플레이리스트를 셔플 모드로 두고 재생하더라도 충분히 경향성이 잡힌다. 셔플 모드로 듣더라도 별로 안 좋아하는 트랙은 반 이상 듣기 전에 넘기기 십상이므로.

나는 음악을 아직까지도 CD를 사서 구하는데, 그걸 립을 뜬 다음 iTunes로 듣는다. 즉, 남들에 비해 앨범 하나에 지출하는 비용이 크다. 그래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좋은 트랙’을 재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 보통 많이 듣는 아티스트의 잘 듣지 않는 트랙은 충분히 들은 뒤에 기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발견하기 힘든 경우가 많으나, 자주 듣지 않는 아티스트의 경우 모든 트랙이 기피 대상이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보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트랙을 재발견할 가능성이 좀더 높다. 이렇게 ‘재발견’을 하기 위해서도 Last.fm을 사용하곤 한다. 가끔 아티스트의 순위 아래쪽을 뒤져서 사놓기만 하고 잘 듣지 않았던 앨범을 가끔 다시 들어보는 것이다. (물론 ‘괜히 안 들었던 게 아니였군’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같이 사는 선배가 오늘 말해준 아이디어 하나: 클럽 파티를 할 때 참석자에게 Last.fm 계정을 받게 하고, 파티에서는 DJ가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듣는 곡들을 위주로 믹싱을 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자기가 모르는 곡보다는 이미 잘 아는 곡을 믹싱하는 쪽이 더 흥이 나기 때문에 분위기 만드는 데에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난 클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1. 그런 의미로 한 말이라면 ‘자각하지 못한다’는 표현은 진부하면서도 부적절한 것이다. 아무리 서비스를 많이 쓴다고 해도 그걸 쓴다는 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Facebook을 아무리 많이 써도 자기가 Facebook을 쓰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빠져든 서비스를 쓰느라 하지 못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이다. Facebook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Facebook을 쓴다는 사실이 아니라 Facebook을 하느라 못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이다.

  2. 아주 나이브하게 생각하면 재생 회수는 그 트랙이나 앨범, 아티스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실제로 재생이라는 행위에는 감상자의 의지 말고도 많은 환경적인 요인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3.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오덕들이 주로 들었을 일본의 90년대 인기 밴드.

  4. 오프 토픽이지만 이것에 대해 좀더 얘기를 하자면, 내 음악 감상 통계를 보면 전체 기간에서 1위가 LUNA SEA이다. 처음에는 이걸 부정하고 싶어서 LUNA SEA를 한동안 일부러 듣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2위와의 격차가 너무 커서 순위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 뒤로는 내 음악 취향은 일빠 덕후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냥 LUNA SEA가 1위인 채로 냅두고 있다… (그래, 마음 깊은 곳에서는 LUNA SEA의 음악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