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民憙 (홍민희) 블로그

이하의 글은 2010년에 쓴 것입니다. 오래된 글인 만큼, 현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점도 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잘못 알려졌던 정보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제 오래된 글이 회자되는 것을 저어합니다. 읽기에 앞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팀 IRC

아주 큰 집단이거나, 혹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팀에서 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마 네이트온 같은 IM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IM보다는 IRC를 더 추천한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한번 적어보겠다. (IM과 IRC가 대충 어떤 건지는 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

셋 이상이서 대화

MSN이나 네이트온 등의 IM에도 초대 기능이 있어서, 셋 이상이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IM은 직접 초대하기 전까지는 단 둘만의 대화창이고, 직접 IM에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메타포가 부담이 있다. 그에 비해 IRC는 원래 채널이 존재하고, 그 채널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를 킨 사람은 그냥 IRC 채널에 들어온다. 원래 그 채널은 여럿이서 대화하는 곳이니 말을 건다는 부담은 없다. 오히려 나 말고 다들 있다는 그 채널에 나도 들어가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항상 친구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에 비해 IM은 친구네 집에 불쑥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야간개발팀 같은 경우 멤버 전원이 IRC 채널에 상주하고 있다. (주말에는 잘 안들어오는 멤버도 있긴 하지만, 평일엔 다들 있다.)

로그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IRC의 또다른 특징은 로그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설정을 통해 (봇 등을 마련해서) 로그를 기록하게 하면 누군가가 없던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모두 모이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꽤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야간개발팀의 경우 인트라넷에 아예 IRC 로그 메뉴가 있고, 1년전 기록도 볼 수 있고, 아예 특정 키워드로 검색도 가능하다.

작업 방해

IM은 대화창이 한 번 열리면, 그 뒤에 상대방이 말을 한 번이라도 보내면 내가 확인할 때까지 작업표시줄 등에서 번쩍거리며 관심을 요구한다. 그래서 작업에 집중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힘들게 집중했는데 누가 말을 걸어서 방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IRC는 기본적으로 다대다 소통 방식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하는 말이 꼭 내게 하는 소리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대개의 IRC 클라이언트는 그런 걸로 사용자에게 주의를 요구하지 않게 되어있다.

물론 대화 내용 중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면 IRC 클라이언트가 주의를 요구하긴 한다. IRC를 많이 쓰는 사람에겐 아주 익숙한 것인데, 대부분의 IRC 클라이언트가 이 하이라이트 기능을 제공하고 하이라이트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사용자 이름 자동완성 기능도 제공한다. 이를테면 대화창에서 까지만 쓰고 탭 키 따위를 누르면 홍민희, 혹은 홍민희:로 펼쳐지는 식이다. (내용 중간이라면 쉼표나 콜론 없이 이름만 완성된다.) 이렇게 말을 걸면 불리운 사람의 IRC 클라이언트는 사용자에게 네 얘기를 하고 있다라는 뜻에서 사용자에게 주의를 준다.

Twitter가 잘 엔지니어링되지 못한 IRC 클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 이런 IRC 사용 패턴은 Twitter의 언급(mention) 기능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사실 앞서 말한 IRC의 특징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결국 Yammer 같은 기업용 마이크로블로깅 서비스가 해주는 일을 대부분 해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이라이트 외에 채팅방에서의 귓속말이라고 할 수 있는 쿼리라는 것도 IRC에 있다. 이 쿼리로 하는 대화는 일반 IM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IRC 클라이언트가 쿼리로 오가는 말에는 사용자에게 계속 주의를 요구한다.

IRC를 시작하려면?

IRC를 시작하는 것은 어찌보면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적당한 IRC 클라이언트를 골라 적당한 IRC 네트워크에 채널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여력이 된다면 직접 IRC 네트워크 서버를 구축해서 운영하는 편이 좋긴 한다.

적당한 IRC 클라이언트라는 말이 생각보다 어려운데, Mac이라면 엄청나게 심플한 LimeChat을 추천하고, Linux라면 대부분의 배포본에서 패키지로 제공되어 설치하기 쉬운 XChat을 권한다. 문제는 Windows인데 대부분 mIRC를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주변 몇 사람들은 IRC 클라이언트로 Opera 브라우저를 추천하기도 한다.1 이도저도 싫다면 랜덤여신 님이 만든 인클 웹 IRC를 추천한다. 워낙 다른 Windows용 IRC 클라이언트들이 UI가 후져서 이게 제일 깔끔한 편이다. 게다가 Google Chrome의 web application shortcuts 기능을 쓰면 일반 애플리케이션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적당한 IRC 네트워크로는 주저없이 오징어 IRC 네트워크를 추천한다. 비교적 가장 최근에 구축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EUC-KR을 사용해야 하는 등의 레거시가 없다(UTF-8을 쓴다).


  1. Opera 브라우저가 괜히 쓸데없는 기능을 잔뜩 안고 있는 편이다. IRC 클라이언트 기능도 그 중 하나다. Opera를 IRC 클라이언트로 쓰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브라우저로는 쓰기 싫지만 IRC 클라이언트로는 썩 좋기 때문에 IRC 클라이언트로만 쓴다고 한다.